Memorial Day 와 현충일(顯忠日) usual



미국 전몰장병기념일(Memorial Day)

원래는 ‘Decoration Day’라고 칭했다. 이날의 전통은 행진, 바비큐, 그리고 퇴역군인의 무덤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전몰장병기념일은 주요한 국경일이다. 1971년 이후부터는 5월 마지막 주 월요일로 정해졌다. 이 날은 행진, 연설, 의전행사, 기도를 하면서 전쟁이나 국가 위기의 시기에 국가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산화해 간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경건하게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미와는 달리 전몰장병기념행사는 원래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하게 시작된 지역적인 행사였다. 남북전쟁 당시 전사자가 많았던 남부의 25개 도시, 대표적으로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 미시시피 주의 메콘과 콜럼부스, 펜실베이니아 주의 보알스버그, 일리노이 주의 카본데일 등에서 전몰장병기념행사가 처음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1868년에 일리노이 주 출신의 로건(Maj. Gen. John A. Logan) 미 하원의원이 5월 30일을 ‘최근의 폭동에서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 바친 동료들의 무덤을 장식하는’ 날로써 지정하자고 선포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전몰장병기념행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그는 “그들은 지금 미국 전역의 도시와 마을의 교회마당에 묻혀 있다.”라고 언급해 어느 한 지역의 행사가 아닌 국가적인 행사임을 분명히 했다. 그가 이날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분명하고 간단하다. 이때가 꽃이 가장 활짝 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언은 원래 1868년, 한 해 동안만 시행하자는 것이었지만,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매년 5월 30일에 계속해서 전몰장병기념행사를 실시했다. 남부지역 출신으로 두 번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경력을 가진 로건 의원의 의도는 단지 남부 연합군 측의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몰장병기념행사를 실시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서로의 적대적인 감정을 지워나갔다. 결국 남북은 사라지고 모든 무덤이 꽃으로 장식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전몰장병기념일은 미국을 위해 싸운 모든 전사자를 추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1966년 존슨 대통령은 뉴욕 주의 워털루를 전몰장병기념일의 발상지로 선포했다. 물론 워털루에서 열린 1966년 5월 5일의 행사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최초의 공식적인 행사임은 분명하다. 이날은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조기를 게양하는 등 사회 전체가 행사에 동참한다.

전몰장병기념행사는 지금도 1868년에 워털루에서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오늘날에는 전몰장병기념행사를 워털루가 아니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날은 알링턴 국립묘지 290,000개의 무덤 전부에 작은 국기를 꽂는다.

비공식적이지만 사람들은 보통 전몰장병기념일 즈음에 여름이 시작된다고 느낀다. 따라서 많은 미국인들은 주말과 전몰장병기념일 3일 동안 야외로의 소풍을 계획한다. 하지만 이 소풍계획에는 대개 행진과 추도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2XXXXX00062 [발췌]




Memorial Day is a federal holiday in the United States for remembering the people who died while serving in the country's armed forces.[1] The holiday, which is observed every year on the last Monday of May,[2] originated as Decoration Day after the American Civil War in 1868, when the Grand Army of the Republic, an organization of Union veterans founded in Decatur, Illinois, established it as a time for the nation to decorate the graves of the Union war dead with flowers.[3] By the 20th century, competing Union and Confederate holiday traditions, celebrated on different days, had merged, and Memorial Day eventually extended to honor all Americans who died while in the military service.[1] It marks the start of the unofficial summer vacation season,[4] while Labor Day marks its end.

Many people visit cemeteries and memorials, particularly to honor those who have died in military service. Many volunteers place an American flag on each grave in national cemeteries.[weasel words]

Annual Decoration Days for particular cemeteries are held on a Sunday in late spring or early summer in some rural areas of the American South, notably in the mountain areas. In cases involving a family graveyard where remote ancestors as well as those who were deceased more recently are buried, this may take on the character of an extended family reunion to which some people travel hundreds of miles. People gather on the designated day and put flowers on graves and renew contacts with relatives and others. There often is a religious service and a picnic-like "dinner on the grounds," the traditional term for a potluck meal at a church. It is believed that this practice began before the American Civil War and thus may reflect the real origin of the "memorial day" idea.[5]

Memorial Day is not to be confused with Veterans Day; Memorial Day is a day of remembering the men and women who died while serving, while Veterans Day celebrates the service of all U.S. military veterans.[6]



현충일(顯忠日)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전쟁을 맞았고 이에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으며 백만 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이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자리가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바,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현충일로 공식적으로 개칭되었다.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행하는바 서울에서는 국립묘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추모대상범위는 6·25전쟁에 전사한 국군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덧글

  • 넋은 별이 되고 2017/06/07 14:36 # 삭제 답글

    넋은 별이 되고
    -유연숙

    모른 척 돌아서 가면
    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
    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
    그 길을 택하셨습니까

    시린 새벽 공기를 가르며
    무사귀환을 빌었던
    주름 깊은 어머니의 아들이었는데
    바람 소리에도 행여 님일까

    문지방 황급히 넘던
    눈물 많은 아내의 남편이었는데
    기억하지 못 할 얼굴
    어린 자식 가슴에 새기고
    홀연히 떠나버린 아들의 아버지 였는데
    무슨 일로 당신은 소식이 없으십니까

    작은 몸짓에도
    흔들리는 조국의 운명 앞에
    꺼져가는 마지막 물씨를 지피려
    뜨거운 마지막 물씨를 지피려
    뜨거운 피 쏟으며 지켜낸 이 땅엔
    당신의 아들딸들이
    주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있었으리오
    주저 없이 조국에 태워버린
    당신의 영혼들이 거름이 되어
    지금
    화려한 꽃으로 피어 났습니다.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
    파도처럼 높았던 함성
    가만히 눈 감아도 보이고
    귀 막아도 천둥처럼 들려 옵니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
    수많은 프르른 넋
    잠들지 못한 당신의 정신은 남아
    자손들의 가슴속에 숨을 쉬고
    차가운 혈관을 두드려 깨웁니다.

    이제 보이십니까
    피맺힌 절규로 지켜낸 조국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태워
    어둠을 사르는 촛불같이
    목숨 녹여 이룩한 이 나라
    단신의 넋은 언제나
    마마대해에서 뱃길을 열어주는
    등대로 우뚝 서 계십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지는 일 많다 하지만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은
    우리들 가슴속에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날 것 입니다.
  • badoc 2017/06/07 14:39 #

    2017년 6월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배우 이보영이 낭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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