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비리의 주홍글씨 역사속으로





[이슈 논쟁] 비리·친일 등 과오만 보지말고 공적 포함한 균형적 평가 이뤄져야

입력 2011.08.16. 21:07 수정 2011.08.17. 00:57 댓글 0개


●찬성'英 장교 출신' 조지 워싱턴, 친영파 비난 못해이분법적 사고가 낳는 '인격 테러' 지양해야

국립묘지 현충원에는 국가원수와 국가에 현저하게 기여한 유공자,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들이 묻혀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대전 현충원 안장에 대해 5·18유관단체들은 그가 5공비리 인사였다는 점을 거론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의 경우 사망 후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는데 대해선 민족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친일파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안현태는 이미 복권되었고, 1965년 3월 베트남에 파병돼 1년 만에 중위로 월남은성훈장과 월남1등명예훈장을 타면서 국위를 선양했다. 또 1968년 1ㆍ21사태 때 기동타격대로 무공을 세웠고, 1974년 특전사 대대장 시절부터 현재까지 부하 유가족 7명을 보살펴왔다. 이번 논란도 이들 유가족이 "안현태와 같은 사랑을 몸소 실천한 애국자를 현충원에 안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탄원서를 제출한 게 결정적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안현태가 베트남전 참전과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 안장심사위원회의 결정은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백선엽은 젊은 시절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 배치돼 팔로군과 동북항일부대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고 중위로 해방을 맞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면서 '친일파'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백선엽은 김일성이 통치하는 북한 공산체제를 탈출해 대한민국에 귀순했다. 또 창군의 주역이며 1948~49년 빨치산 소탕과 숙군 작업에 큰 공을 세웠다. 만약 그런 일을 하지 않고 6·25남침을 당했더라면, 국군은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특히 백선엽은 한국군의 평양 최초 입성,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다.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 결정은 좌익폭동과 6ㆍ25남침으로 인해 풍전등화와 같았던 대한민국을 구했기에 정당한 것이고, 그 공적은 만군 시절의 과오를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백선엽을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인물들은 6ㆍ25 당시 조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민중사관에 심취한 좌편향 인물들에게는 전쟁영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훌륭한 지휘관이 없는 군대는 오합지졸임을 세계전쟁사는 웅변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도 영국 식민정부 치하에서 버지니아 민병대에 장교로 근무하다가 영군군 휘하에서 배운 군 경험이 훗날 독립전쟁을 지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만약 워싱턴을 친영파라고 손가락질한다면, 누구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일생에 걸쳐 종합적으로 공정하게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불행하게도, 친일파 청산의 핏대를 올리는 시민단체는 친북ㆍ종북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폄하ㆍ부정하면서 대한민국 초대정부를 이끈 이승만은 '친일파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가진 자학사관의 소유자들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역사는 만인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자주, 민주, 항일, 민족 등 아름다운 용어로 포장하여 절대선으로 올려놓고 역사 해석을 독점, 타인을 인격적으로 테러하려 한다. 해방 이후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서 '친일과 반일' '독재와 민주' '불의와 정의'라는 이분법적 척도로 마녀사냥을 하면서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고 난리법석들인가? 대한민국이 한가로운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바다가 외적을 막아주는 천연의 지정학적 환경이라도 갖추고 있다고 착각하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리겠다는 심오한 '베트콩식 책략'의 발상에서 나온 것인가?

194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누가 지켰는가? 국군이다. 국군의 국가에 대한 자기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자유와 풍요를 어떻게 누릴 수가 있었겠는가. 6ㆍ25전쟁영웅과 호국의 장군을 인민재판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뒤흔드는 폭거이자 일종의 인격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충원 안장 반대를 보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자식, 부모를 차버린 배은망덕한 자식의 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 자유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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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e readings.. 백선엽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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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땅에서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민족혼을 지킨 계몽적 선각자인 교육자, 종교인 문인, 언론인,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나라인가?


백선엽 장군은  군인으로서는 존경받았지만 만주국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의 장교가 되어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에 몸 담은 경력때문에 친일파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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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친일인명사전

덧글

  • 태극기 휘날리며 2018/10/18 14:03 # 삭제 답글

    나의 조부께서는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1943년경에 전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충남 당진을 떠나 북만주로 불리던, 지금의 중국 흑룡강성으로 이주하였다. 조부모님 모두 식민지 소학교도 다니지 못한 그냥 순하기만 한 무식한 무학의 민초였던 것이다. 일궈 먹을 전답도 없이 소작이나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다 보니 넓은 만주 땅에 가서 농사라도 편히 짓고 식솔들 배불리 먹여 보자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난 것 뿐,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 하려고 만주로 갔다고 미화하기에는 나 자신도 부끄럽고 족적도 전혀 없다. 그 시대에는 이처럼 무식하고 가난한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럼에도 일부 부유한 조선인도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을 일본인과 대등한 지위와 학식을 갖춘 엘리트로 만들기 위하여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였고 천대 받지 않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나의 조부처럼 이주한 조선인 말고도 독립운동을 위하여 중국으로 하와이로 떠난 사람들도 수 없이 많고 그냥 식민지에 살면서 보지 않고 말 하지 않으며 심산 벌판에서 초근목피로 목숨 유지하다가 쓸쓸히 죽어간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친일파로 구분되는 기준은 무엇인가?그 후손들은 언제까지 주홍글씨를 간직해야 하는가...
  • 역사는 흐른다 2018/10/19 10:43 # 삭제

    친일명단사전에 등재된 친일파...그 후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응징해야 친일 청산이 될까? 재산몰수, 공직취업 금지, 별도의 주민등록증, 무인도 격리, 국민의 의무를 이중 부과..... 무엇이 답인가?
  • 창군동우회 2018/10/18 22:18 # 삭제 답글

    ‘국군의 모체’ 국방경비대... 창군의 주역들은 지금?

    1월15일은 우리 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 창설일. 창군의 주역 창군동우회원들 연로... 재향군인회, 창군동우회원들 위로 선물 전해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8-01-18 오후 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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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세대는 말할 나위 없고 기성세대의 기억에서도 잊혀져 있지만 지난 15일은 8·15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창설돼 우리국군의 모체가 되었던 국방경비대(미군정 당국은 당초 국방경비대의 명칭을 ‘조선경찰예비대’로 명명하였으나, 우리나라 측에서 ‘남조선경비대’라고 호칭)가 탄생한 날이다.

    국방부가 1984년 편찬한 ‘국방사’에 의하면 국방경비대는 당시 주한미국육군사령부의 뱀부(BAMBOO)계획에 의거, 국내치안 유지에 부족한 경찰력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2만 5000명 규모의 병력을 책정하여 남한의 8개 도청소재지에 각각 1개 중대(장교 6명, 사병 225명)씩의 경비부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통위부(미군정기의 국방과 경비를 전담하던 기구. 오늘의 국방부) 산하기구로 하여 1946년 1월 15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태릉: 지금의 육군사관학교)에서 1개 중대(제1연대)를 창설한 것을 효시로, 8개 도청소재지에 각각 1개 중대씩을 편성하였으며, 제1연대본부에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를 설치하고, 이들 부대를 관장하게 한 것이다.

    해방이후 군대의 필요성이 화급한 시점에서 국방경비대는 우리 국군의 효시이기도 하다. 국방경비대 창설 주역 또한 우리 군의 최고 원로로 ‘6․25전쟁 영웅’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일컬어져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군 고위 장성이나 주한미군부대에 부임하는 미 장성이라면 전장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전쟁 영웅을 한번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요, 특히 그가 저술한 [군과 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나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과 같은 책에 장군의 친필 서명을 직접 받게 되면 개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정도로 감격해 한다고 한다. 필승불패의 노(老) 장수(將帥) 백선엽 장군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백선엽 장군은 현재 몇 분 계시지 않은 미군정 군사영어학교 출신으로 창군동우회 회원이다.

    창군동우회는 해방 직후 서울에 세워진 군사영어학교 출신 간부들의 모임이다. 군사영어학교는 미군정 당국이 장차의 주한 미군 감축 및 철수에 대비해 한국에 미국식 군사제도와 교리에 입각한 토착군사력을 양성하고자 영어를 이해하는 간부요원을 확보하기 위해 1945년 12월 5일 개교했다.

    이듬해인 1946년 4월 폐교 전까지 110명이 졸업해 장교로 임관되었고, 나머지는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제1기로 편입되었다가 임관하였는데, 이들 창군동우회원들은 국군의 창설과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소련군의 사주와 중공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 김일성이 불법 남침을 개시한 6 ·25전쟁에서는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내는데 결정적 공훈을 세웠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창군동우회원도 몇 분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 창군 과정부터 6․25전쟁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사회적 공헌도가 크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변화와 여건에 따라 이 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덜해질 수밖에 없었다.

    창군동우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동에 크게 불편이 없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국방경비대 창설 일이자 창군동우회의 날인 1월15일이면 전쟁기념관에서 모임을 갖고 이 날을 기념해 왔다. 또 이 날이면 재향군인회장이 참석해 향군의 안보활동을 설명하고 국군탄생의 산파역을 해온 창군동우회원들의 노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국가적 지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 '창군동우회의 날' 기념행사의 한 장면. 사진은 2011년 1월 전쟁기념관 뮤지엄홀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 참석한 당시 박세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사진 왼쪽 맨 앞)이 백선엽 대장 등 원로들과 오찬을 겸한 환담을 하고 있다. 백선엽 대장 한 사람 건너는 故 강영훈 전 국무총리. ⓒkonas.net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들도 세월의 무게는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1946년 4월 110명이던 회원들은 지난해 황헌친 장군의 사망으로 현재 해외 거주 임선하 장군 등 단 네 명만 생존해 계신다. 모두 90세가 훨씬 넘은 연세와 연로함으로 창군동우회의 날 모임은 중단되고 최고령임에도 백선엽 장군만 전쟁기념관 사무실을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향군에 의하면 이번 1월15일 창군동우회의 날에도 행사를 할 수가 없어 창군동우회원 분들 앞으로 건강식품을 전해 드릴 계획이라고 한다. 군과 국가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이제는 조용히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나는 군의 예비역 최고 선배님들을 끝까지 잊지 않고 예우하는 향군의 모습이 더 미덥고 다감함으로 다가온다.

    10년이 훨씬 넘는 이전부터 기자는 창군동우회 기념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자주 행사장을 찾았다. 그 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기사화 했다. 노(老) 장군들의 말씀은 늘 한결같았다. 오직 군과 국가의 안위를 염려함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국가에 서운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기자가 더듬어 본 2011년 1월14일 열린 창군동우회의 날 행사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미국 공로훈장을 받으신 한분이 이런 말씀을 기자에게 했다. “몇 년 전 미국을 가면서 그 훈장(미 공로훈장)을 가슴에 차고 갔는데,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 입국장 직원이 나를 보더니 차렷 자세로 서서 거수경례를 하더라. 나에게 경례를 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훈장에 대한 경례로 보였다. 그리고 그 직원은 다른 어떤 심사도 생략한 채 프리패스로 나를 통과시키며 정중하게 안내해 주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하면서 자국(自國) 훈장을 받은 외국인까지 존경하는 미국사회를 보고 느낀 게 많았다고 얘기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무공훈장은 겨우 한 달에 얼마 주는 요식 행위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 어디 기관에서도 훈장은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는다. 이런 푸대접이 어디 있느냐”하며 탄식도 잊지 않았다.

    그해 백선엽 장군께서도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좌중을 향해 말씀을 꺼냈다. 백 장군께서는 6․25전쟁 당시 한 전투에서 겪었던 어려웠던 상황을 예로 들며, 청와대서 열린 국가 안보정책과 관련한 국민원로회의 석상에서의 발언 내용을 소개하면서 “군 생활을 마치고 일직 전역하는 장교와 하사관의 재취업 문제, 엄동설한에도 나라의 파수꾼으로 진력하고 있는 장병들에 대해서도 국민의 성원과 위문이 있으면 좋겠다고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오직 국가안보와 후배 장병들을 염려하는 백전노장의 심경이 어떤 것인가를 읽게 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10월 당시 야당 비례대표이던 김 모 국회의원이 백선엽 장군을 ‘민족 반역자’라고 폄훼해 군과 예비역은 물론 절대다수 국민의 반발을 크게 사기도 했다. 이에 당시 장성출신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김 의원을 강력히 성토하기도 했다. 그 해 김 의원은 백 장군이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했다며 그 근거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백 장군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에 기자회견을 가진 황진하, 한기호, 정수성, 송영근 의원 등은 “백 장군은 독립군을 토벌한 바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며 김 의원의 발언을 규탄하고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 국군의 모체 국방경비대 탄생의 산파역할을 다 했던 군의 대 원로 창군동우회원들은 지난 2016년 강영훈(육 중장) 전 국무총리와 김계원(육 대장) 전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리고 2017년 황헌친(육 준장) 전 1군사령부 참모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백선엽 ․ 김웅수 ․ 김종면 ․ 임선하 장군 네 분만이 창군동우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konas)

    이현오 / 코나스 편집장. 수필가(holeekva@hanmail.net)


  • badoc 2020/06/02 11:56 # 답글

    [이동복 칼럼] 김홍걸은 백 장군에 앞서서 김대중의 ‘친일’ 의혹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기사등록 2020-05-31 08:51:29




    ▲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흉상 옆에 선 김홍걸 [사진=김홍걸 페이스북]

    대한민국 국군 건군(建軍)의 한 주역(主役)이자 6.25 전쟁의 영웅(英雄)으로 백수(白壽)를 넘기고 있는 백선엽(白善燁) 장군의 유고(有故) 시 서울시 동작동 국립묘지 안장 문제를 놓고 문재인(文在寅) 정권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새삼스럽게 ‘친일파’ 시비를 걸면서 일부 ‘친일파’ 논란 대상 고인(故人) 묘소(墓所)의 ‘파묘(破墓)’를 거론하는 사태가 빚이지고 있는데 여기에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이름의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 비례후보로 이번 4.15 총선거에 출마하여 21대 국회에 진출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김홍걸(金弘傑)이 덩달아 숟갈을 들고 나서고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김홍걸의 이 같은 행동은 지각(知覺) 있는 이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이상한 짓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 김대중 자신이 소위 ‘친일’ 논란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문재인 패거리들이 ‘친일’ 문제를 빌미로 가령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현충원 내 표소를 파묘하려고 한다면, 여기서 과연 ‘형평(衡平)’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의 파묘 역시 불가피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친일’ 행적의 주인공인가? 이 질문은 이 역시 아직 역사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문제이다. 김대중이 왜정(倭政) 시절에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로 소위 창씨(創氏) 개명(改名)을 하고 학교에 다녔을 뿐 아니라 그 창씨 이름으로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그는 왜정 시대에 일본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남겼지만 그 밖에는 왜정 말엽(末葉)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시기의 김대중의 행적에 관해서는 1973년 그가 일본으로부터 납치되었을 무렵부터 거의 20여년간 영국의 더 타임즈와 미국의 뉴욕 타임즈 토쿄 주재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김대중과 특별하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헨리 스캇 스콧(Henry Scott Stokes) 기자가 2013년12월 일본에서 펴낸 “한 영국 기자가 본 연합군 전승(戰勝) 사관(史觀)의 허망(虛妄) - 나의 역사관은 어떻게 변천했는가?”(Fallacies in the Allied Nations' Historical Perception as Observed by a British Journalist)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김대중은 한국군에 입대한 일은 없지만 일본제국(日本帝國) 육군에 지원하여 근무한 사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는 일본군 하사관(下士官)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김홍걸은, 그가 어느 정도 역사에 대한 연찬(硏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선엽 장군을 가리켜 “친일파가 맞다”고 단정하면서 그가 사후(死后) 동작동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을 시비하기에 앞서서 헨리 스캇 스콧이라는 한 시기의 대기자(大記者)가 저서에 기록해 놓은 그의 아버지의 ‘친일 행적’은 우리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스스로 고민해야 마땅한 것이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 망각시대 2020/06/04 10:27 # 삭제

    [단독]백선엽 장군 "어떤 특혜 없이 대전현충원에 묻히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2020.05.28 17:06 수정 2020.05.28 19:40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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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재 기자 사진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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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영웅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 [권혁재 기자]
    6.25 전쟁 영웅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 [권혁재 기자]


    6ㆍ25전쟁 영웅인 백선엽(100) 예비역 대장의 가족이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현충원 논란’이 있는 데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재 백선엽 장군은 노환으로 위독한 상태다.

    야당은 국가보훈처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백선엽 장군을 사후 서울현충원(동작동)이 아닌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싸움에 백 장군이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게 백 장군 가족의 뜻이다.

    2018년 11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백수(白壽. 한국나이 99세)연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무릎을꿇으며 백 장군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8년 11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백수(白壽. 한국나이 99세)연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무릎을꿇으며 백 장군에게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백 장군 측 관계자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전하면서 “백 장군 본인은 대전현충원에 묘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 장군 측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당초 경상북도 칠곡의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장지로 검토했다. 백 장군은 6ㆍ25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육군 제1사단을 이끌고 다부동 일대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을 물리쳤다. 이 승리로 북한군은 대구를 점령하지 못했고, 다부동 전투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전투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백 장군의 뜻은 달랐다. 백 장군은 가족들의 얘기를 들은 뒤 “국가가 관리하는 곳에 개인 묘지를 만들면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이를 만류하면서 “내 묏자리는 대전현충원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백 장군 측 관계자는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서울현충원에서 ‘국가유공자 묘역에 백 장군 묘지를 만들겠다’는 연락이 오긴 했다”면서도 “백 장군 본인도 원칙대로라면 대전현충원이 장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보훈처 측이 ‘백 장군이 현충원에 안장됐다가 뽑혀 나가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스럽다’는 뜻을 밝혔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그런 발언을 들은 적이 없다”며 “정치권의 국립묘지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선 지나가는 말로 의견을 나눈 적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여당을 중심으로 친일ㆍ반민족 인사를 현충원에서 이장한다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서울현충원은 현재 장군 묘역이 꽉 찬 상태다. 1985년 이미 묘지 터가 꽉 찼다. 그래서 백 장군이 임종한다면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 매장해야 한다는 게 보훈처의 입장이다.

    6ㆍ25전쟁 때 도솔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무적 해병’의 휘호를 받은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도 지난해 10월 별세 후 장지를 대전현충원에 마련했다. ‘베트남전 영웅’으로 불렸던 채명신 예비역 중장은 2013년 '파월 장병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영면했다.

    백 장군은 지난 2018년 11월 주한미군이 열었던 백수(白壽ㆍ한국 나이 99세)연에 참석할 정도로 건강이 좋았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건강이 나빠지면서 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nag.co.kr


    [출처: 중앙일보] [단독]백선엽 장군 "어떤 특혜 없이 대전현충원에 묻히고 싶다"
  • 친일파 2020/07/16 09:54 # 삭제 답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신사참배를 한번이라도 경험하고, 일장기에 경례한 사람들은 죄다 친일파다.
    그리고 그 자손들도 친일파다.
  • 험한 세상 2020/07/17 03:57 # 삭제 답글

    "백선엽 장군은 대전 현충원에도 묻히면 안된다" 주장도

    노영희 변호사 (MBN 뉴스와이드 캡쳐 화면)
    노영희 변호사가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을 '우리 민족'이라고 칭하며 故 백선엽 장군은 대전 현충원에도 묻히면 안된다고 발언해 논란이다.

    노 변호사는 13일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 백선엽 장군을 향해 "우리 민족인 북한을 향해 총을 쐈다"며 "대전 현충원에도 묻히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노 변호사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진행자가 곧바로 "말씀하신 부분을 수정하실 의향이 없냐"고 묻기까지 했으나, 노 변호사는 "6.25 전쟁은 북한하고 싸운 것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당시 침략자였던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에 대항해 대한민국을 사수해 낸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북한 인민군은 남침을 통해 낙동강 전선까지 파죽지세로 점령해갔으나, 백선엽 장군의 기념비적인 전투로 전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노 변호사는 당시 북한 인민군을 '우리 민족'이라고 표현해 진행자가 재차 물은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발언의 영상은 SNS상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같은 발언에 '역대급 극좌 발언'이라며 "북한 인민군이 우리에게 총을 쏘는 건 괜찮고, 거기에 맞서 우리가 총을 쏜 건 잘못되었다는 얘기인가"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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