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국동포이산가족협회* 중공(中共)에서 온 편지 역사속으로






선친 이의수(1998년 12월 31일 별세).....사진 앞줄 오른쪽 의자에서 네번째, 께서는 일제강점기에 가족과 함께 북만주로 이주하셨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이되자 중국 목단강에서 의정부까지 도보로 단신 남하하여 이산가족이 되었으며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직업군인의 길을 걸으셨다. 6.25전쟁시에는 소대장으로 참전하셨고 영관장교로 예편하여 자수성가 하시었으며 1975년도에 '재 중국동포 이산가족협회(在 中國同抱 離散家族協會)'를 창립하고 강남구 학동 6단지 가-1 한중빌딩 3층에 사무실을 두었다.

이 단체는 대한적십자사가 추천하여 외무부 산하 사회단체로 등록되어 5년정도 중국과 한국에 있는 이산가족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수 많은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사업을 하였다. 우편물 발송에 필요한 만큼의 소액의 입회비를 국내 이산가족에게 부담시키는것 외에는 정부보조금 단 한푼도 없이 이사장 개인의 사재로 상주 직원 1명의 월급을 주고 사무실을 운영하였다.
그 당시는 중국을 '중공'이라고 호칭했고 외교관계가 없던 적국이었다.
선친의 동생 이한수는 6.25전쟁에 중공군으로 참전하여 전사하였고,1980년에는 중국에 거주하던 가족중에서 모친을 극적으로 국내 귀환시켰으며 1985년 민간인 신분으로는 최초로 중국 동북3성을 방문하셨다.

사업 초기에는 중국과는 우편이나 전화 등의 통신 자체가 불가하여 일본 도꾜에 있던 '사할린 귀환 한인회.. 회장 박노학'을 통하여 우편물이 오가고 하였다. 우편물의 상호 발송이 용이해 지고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전담하게 되자 '재 중국동포 이산가족협회(在 中國同抱 離散家族協會)'는 설립인가를 반납하고 사업을 종결하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상호왕래가 용이해지고 이제는 중국동포와의 관계에서 이산가족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
 
아래 내용은 1975~76년,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이다.



망향38년…중공서 보낸 유필


[중앙일보] 입력 1975.07.30 00:00 | 종합 7면 지면보기


【담양=황영철 기자】38년 전에 고향을 떠나 중공 땅에 살았던 한국인교포가 숨을 거두기전 고국을 그리며 쓴 유필이 고향인 전남 담양군 수북면 주평리11반에 사는 동생 이동식씨 (56)에게 지난 27일 우송돼왔다.
유필의 주인공은 중공 흑룡강성 아역현에서 살다 72년11월 56세를 일기로 이국 땅에서 타계한 이동춘씨. 발신인은 이씨의 맏아들 광호씨(27)로 수신인 동식씨의 친조카.


전남 담양군 수북면 출신 이동춘씨 아들이 우송|소식 모르던 동생 동식씨 뜯어보고 울음|조카가 쓴 편지엔″아버지에 한글 배웠다〃|고향주소·부모형제 등 적어
이 유필의 우송이 늦어진 것은 중공에서 한국으로 편지를 보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인데 지난 6월 재 중국동포 이산가족협의회(이사장 이의수)앞으로 서신을 발송한 것.
동춘씨는 일제시대인 1937년 21세 때 돈벌이를 한다며 고향을 떠나 함경북도 청진으로 갔으나 그후 소식이 끊겨 일가친척들은 오랫동안 생사조차 알길 없는 동춘씨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려왔다.




중공에서 온 편지를 의아한 표정으로 뜯어본 동식씨와 그의 아들 판용씨(37)등 가족들은 뜻밖에 날아든 형님가족의 소식에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숙부님 보십시오…』라고 시작된 광호씨의 편지에는 아버지 동춘씨가 폐암으로 숨지기 직전 유필로 남겨놓은 고향집주소와 부모·형제들의 이름·나이 등이 우편엽서의 두 배되는 크기의 흰 종이에 쓰여 유서처럼 동봉돼 있었다.
동춘씨는 고향에 편지와 함께 전해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하면서 고국 땅에 못 가는 게 못내 한스럽다며 눈을 감았다는 것.
광호씨는 한국인인 엄순자씨(27·경남출신)와 생부(하르빈)에서 결혼, 3간 짜리 집에 살고있으며 모두 생산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급중학교와 아버지에게서 한글을 배웠다는 광호씨는 한글과 한문을 섞어 쓴 편지에서 아버지 형제의 소식이 몹시 궁금하고 고국에 무척 가고싶다고 적었다. 뜻밖에 친형의 친필을 받은 동식씨는 지난2월 재 중국동포 이산가족협회로부터 형이 흑룡강생성 살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편지에 적힌 조카딸(동춘씨의 딸)의 이름인 명옥·명순이 자기 딸 이름과 같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중공서 온 편지 혈육 못 찾아 애 탄다


[중앙일보] 입력 1976.10.26 00:00 | 종합 7면 지면보기


중공 땅에 살고 있는 우리동포들이 가족·연고자를 찾는 편지가 계속 날아오고 있으나(1년간 1만여 통)수취인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이들이 보낸 편지는 주소가 너무도 오래 전의 것이라 지명이 틀리거나 수취인인 가족·연고자 등 이 주소를 옮긴 것이 대부분으로 수취인을 찾지 못하고 반송되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 중국동포이산가족협회(이사장 이의수·서울 강남구 학동6단지가1)는. 26일 국제우체국과 협조, 체신부의 인가를 받아 중공에서 보낸 가족이나 연고자 등 혈육을 찾아 달라는 편지가 수취인을 찾지 못 할 경우 동 협회에서 이것을 모아 매월1일과 15일 두번씩 발신인·수취인등의 명단·주소를 공개, 이들의 가족 찾아 주기「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1년에 만여 통…반송되기도|재 중국 동포 이산 가족협의회|수취인 찾기 캠페인|매월 두번 명단 공개 연고자 찾아오도록
재 중국동포들은 그동안 개별적으로 서신을 띄워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연고자를 찾았으나 거의가 주소가 틀리거나 수취인이 없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백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재 중국동포들은 모두 2차 대전을 전후한 30∼40년 전에 조국을 떠난 사람들로 그 당시의 주소로 가족이나 연고자를 찾을 수 없어 대부분의 편지가 모두 반송되었던 것.

이들은 대부분이 당시일제의 압제에 못 이겨 이민이나 독립운동·징용·정신대 등의 이유로 조국을 떠나 중공에 정착한 사람들로 지금은 거의 만주의 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 등 3개성에 모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재 중국동포들의 편지는 중공에서 직접 오는 것과 중공∼일본을 거쳐 오는 두 가지로 그 동안에는 영남지방인 경남·북의 연고자를 찾는 것이 많았다는 것.

이번 조치로 재 중국동포의 편지는 일단 수신인주소로 배달했다가 수취인을 못 찾으면 모두 동 협회로 보내져 한달 기한으로 공개적인 수취인 확인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동 협회는 20일 1차로 수취인을 못 찾은 50통의 발신인과 수취인 명단·주소 등을 국제우체국으로부터 접수하고 이들의 수취인확인에 애태우고 있다.

중공에서 직접 편지가 날아들기 시작한 것은 74년9월 정부의『비 적성 공산국가와의 우편물 교류원칙』이 발표되면서부터였다.
이 조치에 따라 그전까지 우편물교환이 안되던 소련·「알바니아」·「루마니아」·「불가리아」· 체코 ·백「러시아」·동독·「폴란드」·「우크라이나」·「헝가리」·「유고슬로비아」등 동구11개국과 중공·몽고·「쿠바」등 14개 비 적성 공산국가와 우편물이 교환되고 이들 국가에 우편물을 보내려는 사람은 상대편 주소를 쓰고 국제우편으로 부치면 됐다.
그전까지는 이들 국가와는 일본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오갔다.
중공에서 연고자를 찾는 사람과 연고자의 전 주소·이름(괄호안) 은 다음과 같다.

<서울>
▲신병래(도봉구 상계2동389의168 15통2반 신병남) ▲순옥·명숙(마포구 성산동 산3 23통3반 정귀권) ▲나상달(마포구 서교동 394의31 29통2반 나상훈) ▲서모가촌(도봉구 미아 5동316의1 도흥원 모종주) ▲순희(딸)(서대문구 남가주2동 37통3반 박상호) ▲유광렬(도봉구 창동374 14통1반 유제완) ▲김기봉(영등포구 신고동 박삼선) ▲팽현자(용산구 남영동90 팽해관·팽훈)
<경기>
▲홍순원(양주군 이답면 보산리 싸리말 김연숙) ▲전옥순(파주군 고성면 적헌리3반360 전보현) ▲김병국(연천군 신서이 도신1리8반 김용건) ▲이재준(양평군 청운면 신논리 신현덕) ▲홍순원(연천군 남면 경산리 못말 홍순도) ▲김용덕(성남시 신흥동 118의39통3반 김용복)
<충북>
▲신광호(청주군 청주면 대성전 신괴식·신계혼) ▲김표희(보은군 보은리 광제구약방 김동희) ▲노계훈(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김순득)
<충남>
▲김기철(대전시 성남1동72 1통3반 또는 대전시 소제동 305 김기문) ▲박용철(서산군 음암면 상홍리 박용덕) ▲최온희(홍성군 광천면 용청리 최기순)
<강원>
▲최병자(강릉군 성덕면 부산리 조주환·연환) ▲창화(인제군 상자리중동 조생규·김병든 ▲이기선(회양군 안간면 줄미리 서호구) ▲이기선(회양군 상북면 흥호동리 이겸직·이광규)
<전북>
▲이정순(옥청군 대야면 산월리 지경 남방리 이기몽·이기생) ▲오기옥(김제군 죽산면 종신리 오기현) ▲손순일(남원군 남원읍 하정리·박정규)
<전남>
▲이갑몽(담양군 품구면 경덕리35 김해순) ▲양순희(나주군 보안면 송칠리 김복수)
<경북>

▲신수환(대구시 동구 수성동1가68 김만소씨댁 김정태) ▲권중술(안동시 금곡동135 권태주) ▲이시문(경주군 내동면 보하리 이문출) ▲백영원(청도군 청역면 문산동 황영관) ▲상오(영양군 석보이 원리3동 최상희) ▲용유만(영덕군 영덕면 십응도 손명옥) ▲이수도(대구시 남구 대명동8구199 이종덕) ▲박정수(대구시 남구 대명동 1654의32 박정순) ▲공상준(영천군 금호읍 춘대동정 윤룡현) ▲권태준(안동시 금곡동 7통3반l35 권태주) ▲윤덕룡(월성군 외동면 연안리 김의범·김장출)
<경남 >
▲이판도(금주군 수정동 78분점 유흥주·이금) ▲박성술(울산시 방어1동170 김외권씨 댁 염수길) ▲김옥조(밀양군 하남면 명리 김선조) ▲박포운(밀양군 단정면 단정리 박정술) ▲김갑석(밀양군 군동면 신호리8 최강해) ▲장근재(밀양군 부북면 대항리 장경덕)
<부산>
▲장근재(동래구 중동1373 순운낭 이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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