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기념 라오스 여행 여행



라오스여행





2020년 1월 4일 첫째 날
여행사에서는 분명히 오후 4시 40분으로 미팅시간을 알려 주었는데 총무 담당인 나도 모르게 이륙시간이 변경되었는지, 이노정 친구로부터 일찍 공항으로 나와야 한다는 메시지가 왔고 또 천호 친구도 본인이 감기몸살로 전날부터 치료 중임에도 일찍 나오는 게 좋겠다는 덧붙임이 와서, 나 역시 얼떨결에 1시간 더 앞당겨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보니 2시 30분이었다. 아무도 안 보인다. 덧붙임을 보낸 천호는 1시간이 지난 다음에 나타나고 이륙시간이 당겨진 것으로 오해를 만든 당사자인 노정 친구는 훨씬 늦게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면세구역에서 만난 노정 친구의 안색이 영 아니올시다 이기에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어부인께서 정성껏 만들어 주신 고추장 단지를 출국장 휴대품 검사에서 뺏겼단다. 엥? 그걸 짐으로 부쳐야지 왜 가지고 타려 했는가?
맛도 못 보고 사라진 노정 친구의 꿀단지 같은 고추장 단지, 참 아까웠다.

함께 짐을 부치고 좌석도 어울려 잡으려고 했는데 뭐가 그리 바쁘고 공사다망 한지 몰라도 각개약진으로 탑승하다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가게 되었는데 그나마 회장님은 젊은 여학생 봉사자와 합석하여 손짓 발 짓 정신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보였고 화종 친구와 천호 친구는 생면부지의 아줌마를 가운데 앉히고는 서로 사돈의 팔촌까지 엮어가며 신나고 즐거운 이바구 중인데 나는 화장실 가기도 불편한 창가에 앉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여도, 옆좌석 아저씨께서 팔이 저린지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지 몰라도 계속 팔 털기를 해대며 잔기침까지 보태어 주니 너무나 좁고 불편한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패키지여행의 비애를 느끼게 되었다.
밥도 술도 안주고 모니터도 없어 캄캄한 야간비행에 어디쯤 왔는지도 모르고, 그저 엉덩짝이 아파 꼼지락대면서 대여섯 시간을 참아 보니,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드디어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 도착하였다.

입국장에는 하나투어의 권병수가 가이드가 ‘기일회’ 팻말을 들고 우리를 맞아주었으며 첫 숙소인 무영탄호텔은 규모나 시설이 그런대로 양호하였다. 부산에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부산갈매기 종원이가 로비로 마중 나오고 회장 총무 방으로 모두 집결하여 여행 둘째 날이 접어드는 새벽에 술 파티를 하는데 새삼 모두 즐겁고 반가운 얼굴이니 이 무슨 조화이던가?

2020년 1월 5일 둘째 날
지난밤에 왕창 처마신 술 덕분에 잠은 좀 잤지만 몸 컨디션은 꽝이다.
그래도 은근과 끈기를 자랑하는 이 몸은 악으로 깡으로 견디며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아침 식사를 조금이나마 드셨다. 친구들 모두의 얼굴을 보니 죄다 술이 덜 깨어 부스스하였고, 그나마 진성 친구가 술을 덜 마셔서 그중 해 맑고 다크서클도 없이 댓갈이 양호해 보였다.
자, 이제부터 공식 관광을 한다.
라오스의 개선문이라고 하는 ‘삐뚜사이’에 도착해서 인증샷을 남기고 전망대를 올라가는데 다리가 세근 네근 무겁고, 휘청거리지만 체력 훈련에 임하는 자세로 망루에 올라 비엔티엔을 순시하였다.
곧장 부처님의 흔적을 찾아 ‘왓씨므앙’이라는 사찰로 이동하였는데 우리와는 다른 남방불교의 모습이었다.


‘코프 콥’으로 불리우는 전쟁피해자 재활센터는 과거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곳 방명록에 우리 일행 모두의 이름을 적고 서명하였다.
회장님과 나는 베트남전 참전 경험자이기에 좀 더 새로운 감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찾아간 곳은 웬 소금공장?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모양인데, 바다가 없는 라오스의 땅속에서 염수를 뽑아 올려서 소금을 만드는 곳이란다. 그건 별 관심이 없고 우리에게는 먹거리와 휴식이 더 필요하여 ‘쏭’강으로 달려가 보니 유람선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유람선에는 이미 산해진미는 아니어도 우리들의 눈과 입, 귀를 즐겁게 해 줄 연회석과 조촐한 음식, 노래방 기계는 물론 현지 도우미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늙은 우리들의 입맛을 그런대로 배신하지 않고, 묘령의 라오 소녀가 따라주는 아름다운 맛의 ‘라오비어’를 마시면서 한 곡조씩 불러대니 선상 오찬이 끝나더라.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방비엥’이란다.
에어컨 팡팡 터지는 대형버스에 우리 일행 10명, 권병수 가이드와 현지 여성 가이드 그리고 기사, 모두 13명이 이동하였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들러 해우소도 다녀오고, 먼지 휘날리는 비포장 도로와 중앙선도 없이 적당히 포장된 도로를 번갈아 가면서 우리는 방비엥에 도착하였다. 방비엥 안에서는 도로가 좁아서 대형버스로 이동이 불가하다 하여 초입에 내려서 ‘송태우’라고 하는 마치 필리핀의 지프니 비슷한 차로 갈아타고 이동하게 되었고 비엔티엔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계속 송태우를 타고 다녔다.

우리가 이틀간 머물 곳은 ‘아마리 호텔’
아이고, 투숙객들이 거의 한국 관광객이었으니 라오스 정부나 방비엥 지방 인민 정부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판인데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호텔 밖 작은 거리에도 한국 업소가 상당히 많이 있으니 참 대단하다.
우리 노인들은 적당히 짐을 풀고 곧장, 건전 마사지업소로 단체 고고싱하여 누르고 밟고 비틀고 꺾어대기를 당하면서 키득대었다.
드디어 ‘조선 평양식당’으로 몰려 가 보니, 앗싸! 아주 준수한 외모의 북한 녀성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미 예약된 자리에 둘러앉아서 난생처음 북한 랭면을 먹어보는데, 맛은 별로 아닌가? 그러함에도 그녀들의 공연은 즐거웠으며, 한 편 애잔한 마음이 들었으니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았다. 100불이나 하는 거금의 송이버섯 술을 쾌척해준 재홍 친구, 참 고맙소. 우리 고희청년단원 중에서 화종 친구 한 명만 북한 여성의 손에 이끌려 무대로 나가 함께 춤을 추니 친구 얼굴에 행복이 깃들어 보이더군요.
시내 야시장에서 대동강맥주 10캔을 사서 숙소에 돌아온 우리 ‘고희청년단’ 일행은 또다시 술과 말로 뿜어대는 광란의 밤 2탄을 보내면서 체력 전쟁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0년 1월 6일 셋째 날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방비엥의 풍광은 매우 수려하였다. 여행사를 하면서 여기저기 많이 다녀보신 회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마치 중국 장가계의 축소판 같다 하시니, 시골에서 열심히 농사 지으시며 친목계를 만들어서라도 죄다 다녀온 장가계를 못 가 본 나는 언제 가 보려나.
회장님은 호텔 밥도 참 많이 드신다. 아침을 거의 거르던 나는 아침 먹는 게 좀 힘에 겨운데, 회장님은 맛있게 많이 여러 번 드신다.
오늘은 종일 물놀이를 한다고 해서 반바지, 수영복 차림으로 출발하여 처음 들른 곳은 석회암으로 형성된 코끼리 동굴이었는데 우리나라 동굴이 좀 더 심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우리 고희청년단원 3명만이 짚라인을 경험한 뒤, 카약을 타고 동심으로 돌아가 물놀이를 하였는데 언제 우리가 이 강가에 또 올까요.
오후에는 ‘블루라군’으로 이동하였다. 실제 가 보니, 명성과는 달리 엉성하고 좁은 시설에 실망.
그래도 부산 갈매기와 빼앗긴 고추장 두 친구는 잘 노는데 협심증 예방약이나 먹고 있는 나, 스텐트를 박았다는 회장님, 기승 친구 외에는 기타 잡병에 노출되어있는 나머지 고희청년단원들은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거나 다이빙하는 것이 싫은지 그저 망고나 먹으면서 서양 여자들 몸매나 구경하더라.
폭탄주 곁들인 한식 점심을 맛나게 드신 고희청년단원, 참 행복해 보인다.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석양이 깃드는 강가를 보트로 신나게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즐기는데, 아 하! 신선이 따로 없다. 우리가 바로 신선이로다.

‘방 라오 레스토랑’에서 라오스 민속공연을 보면서 저녁 식사를 즐기는데 요란한 한 무리 관광객이 들어온다. 대륙에서 온 시끄러운 아낙네들, 아마도 곗돈 부어 단체로 왔는지 모르겠다.
민속공연은 평양식당의 공연보다 덜 흥겨웠으나 마지막에 ‘림보락’ 리듬에 맞추어 추는 율동은 그나마 볼 만 하였다.
우리는 각자의 새해 소망을 풍등에 적어 하늘 높이 띄워 보냈다.

역시 체력 전쟁이다. 천호와 진성 친구는 기권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방비엥 토벌에 나서기로 하여 일단 현지 첩보기관으로 상주해 있는 ‘대장금’ 한인 업소에서 탐문 및 첩보 수집을 한 결과, 우리가 찾는 진짜 정보들이 ‘아싸’라고 하는 비밀 아지트에 감춰줘 있음을 알고 총공격하여 접수해 버렸다.
그러나 정보의 가성비는 흡족하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 단원들은 또다시 광란의 밤으로 진입하였으나 체력이 고갈되어 결국 수면에 들어갔는데 알콜 마약을 좀 더 많이 섭취한 회장님과 화종 친구는 야맹증이 도져서 개별 순찰복 차림으로 밖에 나가 외부 보행자 검색과 시설을 점검하고 왔다는데 뭘 점검했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렇게 방비엥의 마지막 밤은 사라져만 갔다.



2010년 1월 7일 넷째 날
비엔티엔으로 돌아가는 날.
방비엥에서의 관광 일정은 끝이 나고 여유 있는 호텔 조식을 마치고 오전 10시경에 비엔티엔으로 출발하였다.
약 4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우리나라 고속도로 같으면 1시간이면 족히 도착할 것 같았지만, 빨리 가면 뭐 하겠는가? 님도 돈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 비엔티엔인데.
중간에 들른 ‘마포나루’ 한국 식당에서의 점심은 꿀맛이 따로 없을 만큼 좋았는데, 그곳 사장님의 고향이 강원도란다. 우리의 회장님은 자기도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척하며 썰을 푸신다.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고향으로 연결되는 인연을 만드시는 회장님의 오리지널 고향은 천안이건만 필요에 따라 대전, 원주, 인천으로 바뀐다는 사실. 크크크.
마포나루 식당 외벽에 우리가 다녀간다는 흔적을 남겼다-10년 후에 또 오자고.

비엔티엔에 도착하여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에서 최고급 라오스 원두 향에 젖어 커피를 마셨는데, 여기 사장님의 고향이 강원 홍천이라고 하니까 우리 회장님이 또 고향 엮기에 들어가시는데, 이이고 회장님.
마침 같은 건물에 마사지업소가 있어서 우리 고희청년단원은 놀면 뭐해? 재차 주물탕과 허리 꺾임의 경험을 즐기고 다음 목적지인 황금사원 ‘파탓루앙’으로 이동하여 절 구경을 원 없이 하며 여러장의 인증샷을 남겼다.
드디어 비엔티엔에서 먹는 최후의 만찬장으로 가 보니 현지 교민인 후배 최원택 사장께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본인의 공장에서 직접 만든 원목 도마까지 선물로 주시니 참 고마웠다.
한-라오 정상회담 시, 최사장님의 아들이 통역을 맡았다고 한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후배의 아들이 아닌가요?

현지 음식의 맛은 별로였지만 역시나 라오비어는 변함없이 우리들의 혀와 목젖을 즐겁게 씻어 주었다. 남은 소주와 과일 등, 먹거리를 가이드와 최사장에게 다 넘겨주고 메콩강 둑방으로 자리를 옮겨 산책하였다. 멀리 강 건너 태국의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언제 또 여기에 올 수 있으려나.
부산갈매기는 추가 1박을 위하여 홀로 숙소를 찾아간다기에 이별의 허그를 하였다.
이제 공항으로 간다.
공항도 죄다 한국 사람으로 인산인해인데 여기서 화종 친구는 올 적에 옆좌석에서 인연을 맺은 그 녀를 또 만나서, 이별의 라오비어를 한 잔 사 주었다.
귀국 비행기의 좌석은 다행이도 3-3-3 우리 고희청년단끼리 함께 배정받아 사이좋게 서로 기대어 잠자면서 올 수 있었다.
라오스여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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