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한국군 양민학살 음해자해 행위와 퐁니 퐁넛 진실 ROKmarine



권상일 나라사랑교육위원회 0 1,638 2019.05.01 00:0


​2017년 서울 종로구 아트링크, 2018년 충북에 이어 2019년 4월 광주민주화 성지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베트남 퐁니 퐁넛 고경태 사진 기록전이 있었다.

한동안은 구수정 여인이 베트남전쟁 당시 적군들이 생산한 베트남 정치국에서 나온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보고서 '


남베트남에서의 남조선 군대의 죄악, 을 인용 한국군과 아무런 관련 없는 양민학살 사건들을 신문에 게제 한국군을 음해자해 하여 왔다. 이번 광주 고경태 퐁니 퐁넛 기록 사진전은 ' 베트남 디엔반현 문화통신청이 생산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보고서를 인용하지 아니하고 , 2000년 6월 미국국립문서 보관소에서 30년만에 기밀해제된 베트남전쟁 당시 주월미군 사령부 및 고위 장성에게 보낸 미국의 일방적 조사 보고서 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현지 주민을 내세워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범으로 뒤집어 씌우고 있다.



이들 음해자해 행위를 살펴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교차 검증없이 일방적으로 현지 주민을 찿아가 취재하였다는 것이 기자로써 상식밖의 행위이자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미군에 의한 밀라이 사건, 이라크 하디타 사건, 한국 6.25전쟁 노근리 사건 모두 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다.

한국군 양민학살 음해자해 행위자들의 학살 사실 이라고 가정해도 서로 교차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기사를 내 보내는것은 인정받을 수 없다. 지금까지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 양민학살 음해 자해 보도가 전부 그러하다.

게제한 기사 내용들이 흉물스럽고 끔직하다. 아이들 머리를 깨트리고, 목자르고, 여자들은 돌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하고..
임산부의 배를 태아가 빠저 나올때까지 군화발로 짓 밟는다.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보내 국민들로 부터 후원금 ,성금을 노리는 행위는 만년을 지탄 받을 것이다.

퐁니 퐁넛 사건을 다루기전 우선 그 당시 한국군 해병대가 주둔했던 호이안, 다낭 ,후에의 험악했었던 배경을 신문 보도를 통해서 살펴보자.


1968년1월30일 월남정부군은 월맹군 3사단,베트콩들과 피로 물들은 접전.사태는 험악하였다. 월남작전본부가 피습 당하고 외각 촌락들은 검은 연기속에 쌓였다.
청룡여단은 구정공세가 시작 하루 전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 월남 남서로 잇는 1번 국도를 끼고 주둔하였다.


진지구측 하기 전 병력미상의 공산군과 지상공격이 전개 한국 해병대는 이들과 치열한 교전을 벌렸다.
다낭 북쪽 후에는 시가 일부가 적의 지배하에 있었고 따라서 월남정부는 월남 전역에 계엄령이 발령 되어 계엄 사령관의 관할하에 있었다.
청룡여단은 월맹군과 베트콩의 구정공세 맞선 것으로 , 청룡여단 주둔지 호이안시 디엔반현 등 공격하자 전 청룡여단이 베트콩수색 소탕작전이 전계, 월맹군 3사단과 한달간 혈투 끝에 격퇴시켰다. 이때, 1968년 2월12일 한국 제2 해병여단 제1대대1중대가 퐁니 퐁넛 마을 주위를 일렬 종대로 수색하다 발생한 사건이다.

32년 만에 공개된 문서란 퐁니 퐁넛사건에 대한 미군의 조사과정 문서로써 사건 현장을 목격 했다는 미군 병사와 남베트남군이 조사관에게 진술한 내용을 문서화 한것이다.
월맹,베트콩 소행인지 아니면 남월남,또는 미군,포병에 의한 희생인지 미궁에 빠진 사건을 고경태는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이라고 한국군에게 뒤집어 씌움.


조사보고서 일부이지만 조사내용들을 살펴보자
당시 1,2,3 소대 순으로 일렬 종대 대형으로 퐁니촌을 통과 사병 간 안전거리 5m 유지하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앞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수 없었고 서쪽 방향 퐁넛촌에서 총소리와 부락이 불타는것을 목격했다 .
중대장의 글을 대한적이 있다.




지도와 촌락 명칭은 보고서와 동일 하지만 병사들은 자체 제작한 것으로 위,아래 조사 보고서를 참고하면서 검토 요함.


의혹 이라고 단정할 결정적인 대목이' 누가퐁넛에 갔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을에서 어떤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자세한 내용 없음,
한국 해병제2여단 사령관 김연상 준장은 지역 사령관에게 , 자신이 조사했으며 사상자는 포병과 북 베트남군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포병 살상 반경을 국방부에 질의 답변 내용입니다.
포탄 발사하기 시작하면 어디 한 두발 발사할까요.
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주월 채명신 중장에게 보낸 서신


채명신 사령관이 웨스트모어랜드 사령관에게 보낸 답장 내용중에 퐁니마을에 들어간 사실이 없고, 퐁니 마을 반대 편인 퐁넛 북서쪽으로 이동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미해병대 연합 전투중대 소속 봉롱 병장은 베트콩들이 한국 해병들이 입고 있는 제복과 비슷한 위장용 군복을 입고 자주 출몰하였다는 증언에 따라 당시 언론 보도를 살펴 보았다.

청룡부대가 호이안에 주둔하고 있는데 베트콩 비밀 방송이 민간인 학살 했다고 주장.

베트콩들은 한국군 작전지역에서 촌민들이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는다고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한 다음 한국군에게 뒤집어 씌우는 상투적인 수법을 써 오고 있다고 지적.

월남 남부지역에서 700명 이상 민간인을 학살 했다.선전하고 있는것을 일부 외신 신문과 통신이 인용 보도한데 대해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선전공세이며 한국인과 월남 국민을 이간 시키려는것. 언론보도를 통해서 입증 해 보았다.
정말 그럴까? 8년8개월 동안 32만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하러 갔다는 것일까? 아래 베트남공화국 수상 판후이콰트 파월요청 공한을 살펴보라 !

가짜방송 ,가짜 언론보도, 가짜 한국군 양민학살 판결 ..이러고도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인권과 평화를 외칠것인가?



























덧글

  • badoc 2020/04/22 20:05 # 답글

    나는 1970년 11월에 청룡6진 23제대로 파월되어 쾅남성 호이안 지구 남푸억에 주둔하는 2대대 7중대 소속으로 13개월간 참전하였는데...선배 해병이나 현지인 그 누구로 부터도 양민학살과 같은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베트콩들이 매설한 지뢰를 밟고 폭사한 전우의 까맣게 타버린 절단된 다리 한쪽을 부등켜 안고 슬피 울던 기억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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